경기침체·新미화 100달러 출시직전…`가짜돈'주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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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위폐감식 17년 전문가…박억선 외환은행 차장

# 2008년 11월(미국발 금융위기) 부산. 미 달러화 가치가 크게 상승하자 중국에서 미화 100달러짜리 위조지폐를 대량으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시키려던 일당이 경찰에 적발됐다. 경찰에 압수된 위조지폐는 숨은 그림과 미세문자 등이 정교하고, 햇빛에 비추면 색이 변하는 등 진폐와 식별이 거의 불가능했다. 실제 경찰이 압수한 위폐를 일부 시중은행에 설치된 위폐감식기에 투입해본 결과 진폐로 판명되기도 했다. 이 사건은 국내 위조지폐 사건중 최대 규모의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 2012년 7월(유럽발 재정위기). 북한이 만든 미화 100달러 위조지폐를 중국에서 위안(元)화로 환전해 외화벌이를 해온 북한 여성공작원이 국내 공안 당국에 처음으로 붙잡혔다. 중국 환전상들은 북한산 위조 달러인지 알면서도 환차익을 노리고 이를 묵인한 채위조 달러를 위안화로 환전해줬다.

# 2012년 7월 5일. 5만원권 위조지폐 43장이 서울시내 성북·종로·중랑·동대문·노원구 일대에 뿌려진 것으로 확인돼 경찰이 용의자로 추정되는 남성 3명을 공개수배했다. 성북경찰서는 "서울시내 7개 경찰서에서 수사전담반을 편성해 합동수사를 하고 있다"며 "이들이 수도권 일대 편의점·재래시장 등현금 취급업소를 대상으로 계속적으로 범행을 할 것으로 예상돼 공개수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5만원권 위조지폐가 잇따라 발견되면서 `신사임당 감별`에 비상이 걸렸다. 5만원권 위폐는 올 1분기에 82장 발견됐다. 지난해 1분기까지만 해도 3장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급격한 증가세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은 `손쉬운 위폐 확인법`을 담은 안내문 30만부를 긴급 제작해 전국 편의점과 재래시장 등에 뿌릴 방침이다.

경기침체가 전 세계적인 이슈로 부각되면서 `가짜 돈`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박억선 외환은행 위조지폐 감식 전문가(43세)는 "살림살이가 팍팍해지다 보니 위조지폐를 만들어 사용하려는 범죄심리도 활개를 치고 있는 것 같다"며 "특히, 내년 초에는 새 100달러 미화가 나올 예정이어서 위조지폐 `주의보`가 발령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대개 위조지폐 범죄자들은 새 화폐가 나올 즈음에 새 화폐의 생소함 등을 악용, 관련 위폐를 대량유통 시키곤 한다"면서 "2002년 유러화가 시장에 첫 유통될 당시 이탈리아 등 유럽 각지에서 대량의 위조지폐가 유포, 국제적인 이슈가 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박 차장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던 2008년 11월, 부산에서 100만달러 규모의 위폐 반입사건이 터졌을 땐 아찔했다"며 "만약 한꺼번에 100만 달러가 시중에 유통됐다면 은행마다 대소동이 벌어졌을 것이다. 위폐 청정국가인 우리나라도 관련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알려준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국·내외적인 위조지폐는 범죄조직과 연계돼 개인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한다.

또 통화질서 문란, 국가 안보 위협등 국가적 경제손실은 물론 대외 신인도 하락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에 17년 위조지폐 감식 전문가인 박억선 외환은행 차장을 만나 그의 외길 인생과 국·내외 위조지폐 현황과 주의점, 대응책 등을 들어봤다.

◇ 박억선 외환은행 위조지폐 전문가와의 일문일답.

▶국·내외 위조지폐 현황은

-위조지폐 범죄는 최근 10년간 무려 20배나 늘었고 특히 1분기 중 5만원권 위조는 8배나 늘어 82장이 불법 유통됐다. 반면 검거율은 4.2%에 그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 달러의 경우에는 국내에서 연간 25만 달러 안팎으로 발견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는 미국 달러 유통량이 약 7600억 달러 정도로 되는데 이중 매년 1억~2억 달러정도의 위폐가 발견된다. 미 정보당국에서는 40억 달러 이상의 위폐가 전세계적으로 유통되는걸로 추정하고 있다.


▶요즘 위안화 위조지폐가 급증세라고 들었다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 등이 늘어 나면서 위안화 위폐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에서 발견된 위안화 위폐는 117장으로 발견된 전체 위폐의 21.2%를 차지했다. 미 달러(410장)에 이어 두번째 많은 수치다. 국내에서 발견된 위안화 위폐는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연평균 10여 장에 그쳤으나 2000년대 후반 들어 100여 장으로 크게 늘었다. 국내에서 가장 흔한 달러 위폐가급감하고 있는 것과는 반대현상이다. 대외 신인도 추락을 우려한 일부 은행이 위폐 발견 사실을 숨기고 있어 실제 국내에서 통용되는 위안화 위폐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제상황과 위조지폐간 상관관계가 있나

-경기아 안좋을 때 위조지폐는 급격히 증가한다. 국내 사상 최대의 위폐 사건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발생했다. 유럽발 재정위기 탓으로 최근에도 위폐 증가 현상이 뚜렷하다. 더욱이 내년 초 새 미화 100달러가 시중에 유통될 예정이어서 위폐관리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17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위조지폐 관련 사건이 있다면

-2008년 11월 부산에서 발견된 100만 달러 위폐 사건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 경찰당국에서 사전 정보를 입수해서 초기에 압수를 했기에 다행이지, 만약 그것이 국내 시중에 유통이 됐다면 상당한 혼란을 야기했을 것이다. 당시 경찰로부터 전화를 받았을 때는 좀 의아했다. 역사상 국내에서 이렇게 대량의 위조지폐가 발견된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형사들이 100만 달러를 배낭에 짊어지고 와서 위폐 감정을 의뢰할 땐, 보는 순간 입이 딱 벌어졌다. 며칠 후에 미국 중앙은행(FRB)에서도 직접 날아왔을 정도였다. 이 사건 이후로 금융당국에서외환은행 뿐 아니라 다른 은행들도 위조지폐 전문가를 양성하라는 공문이 내려왔다. 이에 따라 현재는 국민 신한 우리 하나 농협 등 각 시중은행에서 최소 1명이상의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다.

▶인쇄기술의 발달 등으로 위조지폐도 갈수록 치밀해질텐데

-컬러복사기와 종이 기술의 발달로 위폐가 쉽게 만들어지고 있다. 새로 나온 5만원권 조차도 색이 변하는 잉크 등 위조 방지 장치를 도입했으나 범죄에 취약하다. 최근에는 현금인출기에서 조차 인식 못할 정도로 정교한 수준이다. 이에 따라 각 은행에서는 기계의 센스 값을 3에서 7 수준으로 올려 놓은 상태다. 이 센스 최고 값이 10인데 이렇게 설정하면 조금이라도 손상되거나 의심스러운 돈은 다 위폐감지기에 걸려 업무가 상당히 많아지는 애로점이 있다.

요즘엔 인터넷 동호인 사이트 등에서 5만원권 위폐 제조방법까지 안내할 정도여서 관련 대비책 마련이 절실하다.

▶위조지폐 감식은 어떤 과정으로 이뤄지나

-우선 위폐 감식은 감별기인 기계에 의해 확인을 한다. 기계는 마그네틱과 UV센서, 적외선, 자외선, 이미지 센서 등을 이용해서 감식을 하는데 감식의 정확도가 약 95% 정도 된다. 이 기계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은 돈은 위폐감식 전문가에게 넘겨진다. 전문가들은 손끝의 촉감과 청각, 냄새 등을 통해 지폐의 독특한 재질을 확인하고, 시각을 이용해서 지폐의 인쇄상태를 보고 화폐의 진위 여부를 판별, 정확도는 99.9%에 달한다.

▶위조지폐 감식 노하우가 있다면

-우스갯 소리로 들릴 수도 있으나 위폐를 감식할 때 화폐에 있는 인물 초상과 눈 싸움을 한다. 눈 싸움을 해서 내가 이기면 그 지폐는 위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 아무리 훼손된 화폐라도 진폐일 경우에는 인물 초상의 눈동자가 선명하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갖고 있다. 그러나 위조지폐는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고 눈동자에 힘이 없어 보인다.

▶감식 가능한 화폐가 몇개 정도인가

-현재 외환은행에서는 41개국 외국통화를 국민들에게 환전하고, 그 외 60여개국 외국통화를 추심이라는 절차를 통해 현금화 한다. 이 100여개국 외국화폐는 진위여부를 99.9% 할 수 있다. 또 기타 어느나라 돈이라도 현존하는 지구상에 있는 돈이라면 모두 감식이 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위조지폐 감식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은

-1997년 말 IMF 당시 정부차원에서 금 모으기 행사와 더불어 장롱속 달러모으기 운동을 전개 했다. 하루에 쏟아져 들어오는 달러의 물량이 1톤 트럭 서너대 물량에 달했다. 이 달러들을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 게 업무다 보니 거의 3개월 동안은 새벽 1~2시에 퇴근했다. 과중한 업무로 몸은 피곤했으나 우리나라 국민들의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에 감동을 받았다.

▶위조지폐 업무 외에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2002년은 한일월드컵에서 4강의 신화를 달성한 해이기도 하지만 그해는 우리나라 돈이 해외로 첫 수출된 원년이기도 하다. 그 첫수출을 내손으로 했다.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우리나라 원화의 국제화가 시작된 것이다. 이에 따라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할 때 현지에서도 원화로 교환이 가능해졌다. 물론 원화의 해외수출로 수수료 수익도 챙길 수 있게 됐다.

▶근무 여건은

-돈을 다루는 곳이다 보니 항상 감시카메라에 의해 통제를 받는다. 사생활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또 돈 먼지로 인해 근무하는 직원들이 호흡기 질환 등에 자주 걸리곤 한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다른 은행원들 보다 보수는 조금 많은 편이다.

▶위조지폐 피해 예방법이 있다면

-무역대금 등 거액의 거래는 반드시 은행을 통해서 하고, 해외 여행시 신용카드 또는 여행자 수표를 활용하는 게 안전하다. 시기적으로 설, 추석 등 명절 연휴 때 주의하고 유흥업소나 야간 택시요금을 고액의 달러로 지불하면 우선 의심부터 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아울러 급하게 물건 값을 지불하고 떠나려는 사람은 꼭 신분 확인을 해두는 게 현명하다.

▶위조지폐 감소 방안은

-위폐에 대한 모럴헤저드가 심각하다. 위폐를 알고 유통시키더라도 무혐의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몰랐다`고 발뺌을 하면 그것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형법에서는 특정범죄가중처벌에 따라 사형까지 선고할 수도 있으나 대개 소액의 과징금이나 무혐의다. 이렇게 무혐의로 풀려난 사람들이 또 다시 위폐를 유통시키곤 한다. 한탕 제대로 하고 나면 떼돈을 벌수 있기 때문이다. 동일범의 경우 현재보다 높은 가중처벌을 하는 등 법 운영을 좀 더 세분화, 강화시켜야 한다.

아울러 유럽 등에서는 지폐에 IC칩을 장착하는 등 위폐 근절을 위해 적극적이다. 우리나라도 이 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지폐에 IC칩을 장착할 경우 위폐 근절은 물론 사회 악인`검은 돈`을 뿌리 뽑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찌보면 금융실명제 보다 더 큰 사회 경제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개인 사생활 침해 등의 문제점은 기술적으로 해소해야 할 부분이다.


■ ＜Tip＞ 5만원권의 위조지폐 감별법

1. 앞면 신사임당 그림과 뒷면 월매도, 문자와 숫자 등을 만졌을 때 오돌오돌한 느낌이 든다.

2.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앞면 좌우 양끝에 5만 원임을 나타내는 5개의 볼록한 줄무늬가 있다.

3. 앞면 중앙과 왼쪽 편에 부착된 입체형 은선은 청회색 특수필름을 사용했다.

4. 지폐를 상하로 흔들면 은선에 새겨진 태극문양이 좌우로 움직이고 반대로 좌우로 흔들면 태극문양이 상하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5. 왼쪽 끝부분에 새겨진 띠 모양의 홀로그램은 보는 각도에 따라 색상이 바뀌며 태극문양, 한반도 지도, 4괘의 3가지 무늬가 차례로 나타난다.

6. 뒷면의 50000원이라 적힌 숫자에는 색변환 잉크를 사용하여 각도에 따라 자홍색에서 녹색으로 변한다.

7.앞면의 흰 부분을 빛에 비추면 신사임당 초상이 나타도록 숨은 그림을 삽입했다.

■ He is…

1970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난 그는 충주상고 졸업 후 1989년 외환은행에 바로 입행했다.

서울 개포동지점에서 은행원 생활을 시작한 그는 당시 지점장이 그에게 외환 관련 업무를 맡기면서 외환업무와 인연을 맺었다. 1996년 외환은행이 위조지폐감식 전문가를 육성하기 위해 사내공모를 내자 1순위로 신청했다. 이후 17년간 위조지폐 감식업무로 외길을 걷고 있다.

최고의 위폐감식 전문가인 박억선 차장은 현재 5년 전 국가정보원의 요청으로 시중은행의 위폐감식 업무 담당자들을 강의한 것을 시작으로 후배 전문가들을 양성 중이다.

박 차장은 "화폐는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경제활동의 중요한 매개체일 뿐 아니라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 등이 함축돼 있는 시각 예술품"이라며 "우리나라를 화폐 청정국가로 만드는 게 삶의 목표"라고 말했다.

< mk뉴스 > [류영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