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화폐 속 왕국의 역사각국 화폐로 보는 세계사 속 숨은 이야기
136 200 2017-02-16
말레이시아 20링깃 앞면에는 투앙쿠 압둘 라만 초대 국왕(King Tuanku Abdul Rahman)과 국화인 히비스커스(hibiscus)가 나와 있다.

신기한 화폐 중에는 말레이시아 링깃(ringgit)이 있다. 만일 어떤 나라가 왕국이고, 그 나라 화폐에 독점적으로 한 명의 초상화가 실린다면 대개 국왕이나 그 국왕의 조상 사진이 실리는 것이 일반적인데 말레시아는 그렇지가 않다는 말이다.

즉, 말레이시아는 왕국이지만 모든 화폐에 실린 초상화는 현직 국왕이나 그의 조상이 아니라 첫 번째 국왕인 투앙쿠 압둘 라만(Tuanku Abdul Rahman)이다. 무슨 말이냐면 현직 국왕과 첫 국왕은 같은 가문이 아니다.

그렇다면 말레이시아에서는 왕가가 그 사이 달라진 것일까? 그렇다. 말레이시아에서는 5년마다 왕가가 바뀐다. 이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알아보려면 말레이시아의 식민지 시대로 거슬러 가봐야 한다.

말레이시아는 말레이 반도와 보르네오 섬을 영토로 한다. 말레이 반도를 식민 지배하려던 영국은 이곳에서 일부 항구 지역을 현지 술탄국에게 돈을 주고 빌려 첫 식민지로 만들었다. 이 지역에 노동자가 필요하자 영국은 중국과 인도 사람들을 데리고 왔다. 이후 영국은 기존의 말레이 술탄들과 싸우지 않고 그들과 수호 조약을 맺으면서 그나마 평화적인 길을 선택했다.

보르네오 섬 상황은 조금 달랐다. 브루나이 술탄국을 제외하면 이미 술탄국들이 사라졌기 때문에 영국은 이 지역을 사바(Sabah)와 사와라크(Sawarak)라는 두 개의 총독부로 통치하고 있었다.

영국은 일단 말레이 반도에 있는 술탄국들을 1895년 말레이속국연방이라는 이름으로 통일시켰고, 2차 대전 이후 말레이 반도에 남은 나머지 지역들을 합해 말레이시아 연합을 만들었다.

1955년 이후 말레이시아 연합에서 총선이 실시됐고, 첫 내각 총리로 당선된 사람은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의 당 총재 툰쿠 압둘 라만(Tunku Abdul Rahman)이었다. 이름이 비슷해 위에 언급한 첫 국왕 투앙쿠 압둘 라만과 헷갈리기 쉽지만 다른 사람이다.

오랫동안 정치적인 투쟁을 통해 평화적으로 말레이시아 독립을 외친 총리 압둘 라만은 1957년 영국 보호를 받아 독립했고, 1963년 보르네오 섬에 있는 나머지 사바, 사와라크, 싱가포르와 연방을 해서 완전히 광복을 이뤘다.

그렇다면 오늘날 싱가포르는 왜 다른 나라가 되어 있는 것일까? 혹은 예전에 있던 그 술탄들이 다 사라졌던 것인가? 이 질문들에 답하자면 이번에는 1950년대 말기로 가야 된다.

독립을 앞둔 말레이 지식인들에게 가장 골치 아픈 일은 9개 지역 술탄들이었다. 독립 국가를 세우기 위해 술탄들의 지지가 필요하지만 통일된 민주 말레이 국가를 세우기 위해서는 이 술탄들이 정권을 포기해야 한다.

이 수수께끼는 느그리 슴빌란(Negeri Sembilan) 술탄국의 기법으로 풀렸다. 느그리 슴빌란에서는 술탄이 술탄 세자들 사이 선거로 선출되고 있었다. 그래서 말레이 연방은 이 제도를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각 지역 9명의 술탄이 5년마다 돌아가며 말레이시아 국왕이 되는 체계를 만들었다.

그 사이 보르네오 섬에 있는 브루나이 술탄국은 말레이시아의 연방 초청을 거부했고, 싱가포르는 중국계 민족 분열 문제 때문에 탈방 당해서 1965년 오늘날의 말레이시아 연방 왕국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말레이시아 모든 화폐에는 100링깃 앞면에서 보듯 투앙쿠 압둘 라만 초대국왕(King Tuanku Abdul Rahman)과 국화인 히비스커스(hibiscus)가 그려져 있다.

사실상 1957년에 출발한 말레이시아 연방의 첫 왕국은 말 그대로 선거로 선출됐다. 9명 술탄 사이에 실시된 선거에서 8 대 1로 느그리 슴빌란의 술탄이었던 투앙쿠 압둘 라만이 이 신생국에서 첫 국왕으로 즉위했다.

그 후 몇 차례 다음 왕을 선출했을 때 선거를 했지만 이제는 9명의 순서가 정해졌지 때문에 술탄들이 순서대로 국왕이 됐다. 특히 1927년생 크다의 술탄인 압둘 할림은 1970~75년과 2011~16년 두 번이나 유일하게 국왕으로 추대된 적도 있다. 현직 국왕은 클란탄의 술탄 모함마드 5세이다. 결론적으로 비유하자면 말레이시아는 일본과 비슷하다. 국왕은 상징적인 인물이고, 국가는 내각 총리가 다스리고 있다.

오늘날 자신의 지역뿐 아니라 말레이시아 전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투앙쿠 압둘 라만은 1967년부터 발행하기 시작한 말레이시아 링깃에 독점적으로 초상화가 실리고 있다. 그렇다면 첫 국왕 투앙쿠 압둘 라만은 왜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았을까?

50링깃 뒷면에는 툰쿠 압둘 라만 초대 총리(King Tunku Abdul Rahman)가 1957년 독립선언을 하는 모습과 야자나무(Palm tree)가 담겨 있다.

그는 군주이면서도 민주주의에 크게 성실한 사람이었고, 내각 총리인 툰쿠 압둘 라만을 예의 바르게 모셨다. 예를 들어 50링깃 뒷면에서도 볼 수 있듯 1957년 독립 선언은 첫 국왕인 투앙쿠 압둘 라만이 아니라 첫 내각 총리인 툰쿠 압둘 라만이 했다.

이 글에서 오직 현대 말레이시아의 탄생만 얘기하는 것은 아쉬우니 마지막으로 한 가지 여행 팁을 얘기하고 마무리하려 한다. 요즘 말레이시아로 가는 국제선 비행기들은 수도 쿠알라룸푸르(Koala Lumpur)나 코타키나발루(Kota Kinabalu)에 도착한다.

100링깃 뒷면에 나와 있는 사바(Sabah)주의 키나발루 공원(Kinabalu Park)

보르네오 섬에 위치한 사바 주의 수도인 코타키나발루는 바닷가에서 보는 낙조가 세계 3대 해넘이로 꼽히기 때문에 매년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 코타키나발루 핵심 관광지 중 하나는 100링깃 뒷면에도 사진이 있는 키나발루 산, 혹은 키나발루 국립공원이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이 공원은 따뜻한 바닷가를 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등산의 기회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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