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없는 사회' 다보탑·쌀·이순신·학 주머니서 사라진 이유
134 600 2016-06-19
이 이야기는 2026년을 배경으로 가상으로 구성했습니다.

"500원 남는 데 어떻게 해드려요?"
"포인트로 적립해주세요. 핸드폰 번호 입력할게요"

직장인 A씨는 대형마트에서 생활용품들을 샀다. 모두 4만9500원이라는 말에 그는 지갑 속 오랫동안 구겨져있던 오만원짜리 지폐 하나를 내밀었다. A씨는 평소 카드나 간편결제 서비스를 사용했지만 수 개월 째 책상에 올려뒀던 돈이 눈에 띄어 들고 나왔다. 마트 직원은 어색하다는 듯 지폐를 받아 들고는 잔돈을 꺼내는 대신 A씨의 핸드폰 번호를 기계에 입력했다. 잠시 후 500원은 A씨의 통신사 포인트로 적립됐다.

일상에서 동전은 찾아보기 힘들다. 아니 지폐를 사용하는 사람도 드물다. 눈에 실제로 보이는 잔돈이란 개념은 사라진 지 오래다. 1000원 미만의 잔돈은 이제 선불식 교통카드나 은행 계좌로 들어온다. 통신사, 마트 포인트로도 적립돼 요금을 내거나 물건을 살 때 사용할 수 있다.

A씨는 잔돈을 모두 통신사 포인트로 적립한다. 5년 전까지만 해도 1000원 미만의 잔돈이 남는 물건들이 많아 잔돈 모으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렇게 통신사 요금을 내고나면 요금 할인을 받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잔돈이 남는 물건 가격이 그리 많지 않다. 한때 모든 마트나 백화점에서 사용됐던 '99마케팅'(가격의 끝을 99원, 990원 등으로 해 저렴하게 보이는 효과를 이용하는 마케팅 방법)은 이제 잔돈 사용처 입력 시간이 소요되는 등 비용 문제로 일상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실물 동전을 수거하는 건 편의점의 몫이 됐다. A씨는 8년간 저금통에 모아뒀던 동전을 들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평소에 잔돈을 받으면 주머니에 넣어뒀다가 책상 위 저금통에 넣었던 동전들이다. 10년 전이었던 2016년에는 은행 동전수납 기계를 이용해 동전을 지폐로 바꿨지만 이젠 이마저도 사라졌다. 동전을 선불형 버스카드에 충전해줄 수 있는 편의점이 동전수납처가 됐다. 편의점은 동전을 버스카드 금액으로 충전해주고 받은 동전은 한국은행에 가져다준다. '동전없는 사회'의 한 단면이다.

◇ 韓銀 "'동전없는 사회' 만들겠다"…'선불식 교통카드 잔액 충전' 시범모델로

한국은행이 2020년을 목표로 '동전없는 사회'를 구상하고 있다. 카드결제와 전자결제가 상용화되면서 사실상 동전이 무용지물로 전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전이 시중에 돌지 않으면서 매해 새 동전을 만들어내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도 이같은 구상에 한 몫했다.

한은은 올해 하반기부터 선불식 교통카드 잔액 충전을 '동전없는 사회'를 위한 시범모델로 확정하고 편의점이나 마트, 약국, 커피숍 등 동전이 주로 사용되는 상점에 단말기를 설치, 시범모델을 운영할 예정이다.

한은이 가장 먼저 도입할 시범모델은 선불식 교통카드 잔액 충전 방식이다. 예를 들어 편의점에서 4500원짜리 물품을 사고 5000원짜리를 지폐를 내면 잔돈 500원은 현물로 받지 않고 그 자리에서 교통카드 잔액으로 충전하는 방식이다. 김정혁 한은 전자금융팀장은 "잔돈 충전을 위해 현재의 단말기 프로그램을 일부 수정해 마트·약국·커피숍 등에 보급하는 식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한은은 서울 외에도 다른 종류의 버스카드를 운영하는 지자체들과 잔돈 충전 방안을 적극 논의하고 있다.

한은은 선불형 교통카드 대신 잔돈을 충전하는 어플리케이션(앱) 개발도 검토 중이다. 하지만 개발에 시일이 걸려 내년에 시범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이후에는 통신사 포인트에 잔돈을 적립해 요금결제에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이 유력하다. 또 자주 이용하는 유통사ㆍ마트의 마일리지로 적립해 직접 물건을 살 때 사용하는 방식도 도입을 고려 중이다.

◇ 동전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냐…'현금을 쓸 권리' 주장도

하지만 동전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10대나 노년층,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로 현금을 사용하려는 집단 등 여전히 현금을 사용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동전은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한은의 목표는 동전 사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동전을 사용하는 데 드는 사회적 비용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동전은 10원, 50원, 100원, 500원 등 4개가 만들어지고 있다. 10원짜리 동전을 하나 만드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20원 정도다. 동전 가치가 제조 원가의 절반 수준이다. 50원, 100원, 500원은 10원짜리 동전보다 지름이 넓고 테두리에 위조방지용 톱니가 있어서 제조 원가가 10~20원 더 비싸다.

지난해 동전 발행액은 1032억원에 달하지만 동전 환수율(발행액 대비 환수액)은 10%대에 그쳤다. 동전을 100개 만들어도 은행으로 돌아오는 것은 10개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반면 지폐의 환수율은 60%를 넘는다.

동전을 만들어도 저금통 등에 넣어두고 실제로는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빈번해지면서 새로 만들어내는 비용이 계속 들어가는 상황이다.

김 팀장은 "동전사용을 점차 줄이면서 화폐발행 비용도 줄여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며 "앞으로 4~5년 뒤 '동전 안주고 안받기 운동'을 펼칠 것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동전없는 사회를 넘어 지폐마저 사용하기 어려운 환경이 될 경우 기본권 침해 논란도 일 것으로 보인다. 이미 '현금없는 사회'에 근접한 스웨덴이나 덴마크에서는 상인들에게 현금 사용을 거부할 권리도 일부 주어져있어 '현금을 쓸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신용불량자 등 카드 발급 자체가 어려운 사람들의 기본 생활권이 박탈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온라인 결제시스템에 결제 항목이 모두 입력되면서 보안문제 등이 새로운 사회 문제로 거론되고 있다.

◇1000원 미만 단위 없어지나…물가는?

'동전없는 사회'는 잔돈이 사라지면 1000원 미만의 단위가 사라져 물가가 오를 거란 우려가 있다. 예를 들어 800원짜리 생수 1통을 구매했을 때 200원의 잔돈이 생긴다. 지금은 동전으로 거스름돈을 받는다. 하지만 잔돈을 선불식 교통카드로 입력하게 되면 실제 결제 현장에서는 불편함과 비용 때문에 생수 1통의 가격을 1000원으로 올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김 팀장은 "선불식 교통카드에 잔돈을 적립하거나 충전을 하면 동전을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오히려 실제 제 값을 다 받을 수 있고, 상점이나 마트 간에 같은 물품에 대해서 100원이라도 더 깎는 가격 경쟁요소가 생길 수 있어 오히려 가격 안정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생수와 같은 일부 제품의 가격이 올라 물가 상승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상승폭이 크지 않아 실제로 가계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과 교수는 "일부 상품들의 가격이 오르면 물가 인상 효과가 일부 있겠지만 전체 물가 상승률을 올릴 정도로 유의미한 수준으로 오르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도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용카드를 쓰고 동전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며 "동전을 없애는 것이 물가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전 세계가 현금없는 사회를 준비하고 있는 만큼 우리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도 나온다. 윤 교수는 "전체적으로 카드 결제나 전자결제가 늘면서 현금없는 사회는 그리 먼 미래의 일은 아니다"며 "전 세계가 비슷한 흐름으로 가고 있는 만큼 우리도 큰 맥락에서 보고 천천히 준비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시아경제] 최종수정 2016.06.17 11:30 기사입력 2016.06.17 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