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슈퍼노트
105 2604 2013-10-30
가수 나훈아를 닮은 ‘모창 가수’ 너훈아·나운하는 사랑받는다. 그러나 ‘짝퉁 가수 박상민’은 법적 처벌을 받았다. 원조와 비슷하면 장난이든 밥벌이든 용인될 수 있지만, 너무 똑같으면 범죄다. 100달러짜리 진짜 짝퉁 ‘슈퍼노트’가 그 짝이다. 분명 위조 지폐인데, 진짜를 뺨친다.

슈퍼노트는 진폐와 똑같이 면섬유 75%와 마 25%로 제작된 용지를 사용해 육안이나 촉감으로는 물론 위폐감식기도 식별하지 못한다. 적외선과 특수확대경을 이용해 500장 이상 사용하지 않은 채 다발로 묶였을 때만 식별이 가능했다. 재단할 때 각도를 다르게 하기 때문에 일련번호와 비교해 위폐를 감식하는 방식이다. 사실상 낱개로는 진위 감식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1989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처음 슈퍼노트가 발견되자 미국 의회는 ‘미국에 대한 경제전쟁’이라고 선포했다. 맨 처음 꼬리가 잡힌 건 북한 무역회사 간부들. 외교관 여권을 소지한 그들은 1994년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에 25만달러를 입금하려다 체포됐다. 1998년엔 모스크바 주재 북한대사관 직원이 3만달러를 지니고 있다 발각됐다. 김정일 비자금을 관리하던 그는 4년 후 서방으로 망명해 “북한이 만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슈퍼노트는 중국 단둥과 선양, 일본 사카이 모나토항 등 북한과 연계되는 항구도시에서 종종 발견된다. 부산에선 2008년 9904장(약 100만달러)이 압수됐다. 카지노가 많은 홍콩과 마카오, 일본도 슈퍼노트의 천국이다. 북한 요원들은 슈퍼노트로 카지노칩을 산 다음, 한두 시간 즐기다 진폐로 바꾸는 방식으로 세탁한다. 단둥에선 관광객으로 위장한 북한 요원들이 노골적으로 70달러, 50달러에 할인해서 판다.

2000년대 초 북한의 비밀 아지트였던 일본 니시아라이병원 내 재일조선인과학기술협회 사무실에서 스위스산 용지와 토너, 잉크, 화학약품이 발각되면서 슈퍼노트 생산지로 북한이 특정됐다. 미국은 북한이 중고 동판 15개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2005년 미국이 BDA의 북한 예금 2500만달러를 동결한 건 그 때문이다. 슈퍼노트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은 최근 100달러 지폐의 도안을 바꿨다.

세계일보 원문 기사전송 2013-10-29 21:02 최종수정 2013-10-29 2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