꾼들의 전설같은 사기행각
10 4062 2004-07-12
'검은 돈'으로 상징되는 명동 사채시장에서는 말로 할 수 없는 협잡꾼들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능수능란한 '꾼'들이 그럴싸한 시나리오를 갖고 접근, 사기를 칠 경우 순진한 투자자들은 당할 수 밖에 없다.

엄밀히 얘기하면 순진하다기 보다는 남의 돈으로 일확천금을 꿈꾸다 헛물을 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돈 냄새에 이성을 잃어 터무니 없는 거짓말에 속아넘어가는 것이다. 명동 사채시장에는 이런 '순진한' 투자자들을 상대로 벌어진 '전설같은 얘기'들이 전해 내려온다.

◆ 권력실세 등에 엎은 위조채권

명동에서는 간간히 위조채권을 갖고 사기행각을 벌이는 무리들이 돌아다닌다. 지능적인 사기꾼들은 투자자들을 현혹하기 위해 자신이 전면에 나서지 않고 항상 사회 저명인사나 권력실세들을 끌고 들어온다. 이런 경우 허명에 눈이 먼 졸부들이 공돈 한번 벌어보려다 몇 억원을 눈뜨고 날려버리곤 한다.

명동에서 잔뼈가 굵은 사채업자가 전하는 일화 하나. 한 때 정체불명의 브로커가 명동에 나타나 일본 수표를 들고 다닌 적이 있다. 일본 정부가 발행한 거액의 수표 소지자를 알고 있는데 이를 일본 정부에 청구하려면 상상이상의 거액이기 때문에 권력실세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떠들고 다닌 것.

몇 십년 전 일본에서 거대한 규모의 일본 국채를 갖고 있다 이를 한 장의 수표로 교환해 보관하고 있는 한 거부가 한국의 모 병원에 입원 중이고 몸이 완쾌되면 일본 정부에 청구할텐데 금액이 너무 커 정부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 사기꾼은 그럴 듯하게 복사한 일본 정부가 발행한 위조수표를 들고 돌아다녔다. 이런 사기에 귀가 솔깃했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한 사채업자는 "칼라인쇄로 만든 위조 일본채권이 간간히 돌아다닌다"며 "'극비'라고 써서 갖고 오지만 100% 사기이기 때문에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 5공 발행 구권화폐 교환하자

위조채권과 함께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사기메뉴 중 하나가 '5공 발행 구권화폐'다. '5공 때 발행했던 만원권 지폐다발 몇백억~몇조원치가 있는데 이를 수표로 바꿔주면 수고비를 섭섭치 않게 주겠다'는게 대부분이다.

황당한 얘기지만 암담했던 5공 시절을 떠올리며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겠거니 여기는 사람들이 미끼를 덥썩 무는 경우가 있다. 이 밖에 중동국가 화폐와 후세인이 그려진 이라크 고액 리알화가 콘텐이너로 몇개로 미 8군 영내에 보관돼있다고 사기를 치는 일도 벌어지곤 한다.

◆ 달러 뺏긴 재벌3세, 그리고 물딱지 어음

명동 사채시장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또 다른 얘기 하나. IMF(국제통화기금) 시절인 7~8년전 준재벌 3세가 수백만불을 들고 명동에 나타났다. 달러를 원화로 교환하기 위해 다리를 놓을 사채업자를 찾아 나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원화 한푼 건지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냥 주어 먹어도 해도 별 탈이 없는 돈'이라고 판단한 명동 사채업자가 '어깨'들을 동원, 원화 대신 주먹을 돌려줬기 때문이다. 이 밖에 을지로와 동대문 종합시장 근처 일부 다방에서는 여전히 자칭타칭 '0회장, 0사장'으로 불리는 '꾼'들이 '물딱지 어음(부도 D데이가 잡혀 있는 백지어음)'을 장당 70만~150만원 정도에 거래를 하고 있다.

한 사채업자는 "명동 사채시장에서 상식적인 거래가 아닌 것은 거의 사기라고 보면 되지만 일부 졸부들과 벤처사업가들이 '꾼'들의 꾐에 넘어가곤 한다"고 말했다.

[2004.07.11. 머니투데이 김익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