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수퍼노트’정보 진위논란
3518 2009-06-11
한·미, 최근 주장 … 대북강경제재 노린 무리수 의문

잇따른 초대형 도발로 국제사회를 긴장시키는 북한을 제재하기 위해 우리정부와 미국이 첩보를 정보로 둔갑시키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현재 유엔 차원에서 논의되는 제재수준으로는 북한의 도발을 효과적으로 막지 못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불거진 북한의 수퍼노트(Super Note ; 미화 100달러 위조지폐) 제작 의혹에 대해 정부 유관 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탈북자들의 미확인 발언을 정보로 가공한 것에 불과하다”며 “지난 2005~2006년 방코델타아시아(BDA) 사건처럼 북한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제재를 가하기 위해 한·미 양국이 공조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미국의 한 언론사는 지난 2일 미 정보당국을 인용, “김정일의 최측근인 오극렬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수퍼노트 제작과 유포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노동당 산하기관인 함남 평성의 상표인쇄소에서 이를 제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제임스 스타인버그 미 국무부 부장관이 스튜어트 레비 재무부 테러·금융정보담당 차관 등을 대동하고 한·중·일을 순방하는 과정에 갑작스레 제기된 이 보도는 실효성 논란이 일던 미국 주도의 대북제재 논의에 반짝 활기를 불어넣었다.

해당 보도를 기다렸다는 듯 필립 크롤리 미국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는 지난 5일 브리핑에서 ‘미국은 유엔의 대북 추가제재안 채택과는 별도로 과거 마카오 BDA은행에 있던 북한자금을 동결했던 것과 같은 금융제재를 검토하고 있다’고 시사했다.

당시 워싱턴을 찾은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도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과의 회담 직후 “최근 북한의 수퍼노트와 관련한 구체적인 새 증거가 나온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발언, 외교수장이 이례적으로 정보사항을 확인했다.

이에 대해 앞서의 관계자는 “2002년 북한의 고농축우라늄 제조 의혹이나 2005년 수퍼노트 제작 의혹처럼 미확인 첩보 수준”이라고 말했다.

2002년 대북특사였던 제임스 켈리 차관보는 방북 직후 “북한이 핵무기로 전용 가능한 고농축우라늄 제조 사실을 시인했다”고 공개했으나 우리 정부에 구체적인 증거를 제공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켈리는 미국에 돌아간 뒤 우리 정부에 전화를 걸어 “미국 언론이 확인을 요청할 경우 ‘증거를 확인했다’고만 말해달라. 나중에 구체적인 증거를 제공하겠다”고 했으나 공언에 그친 바 있다. 실체가 불분명했던 이 사건은 그러나 부시 행정부의 강경 대북정책의 신호탄으로 작용, 결국 북한의 핵 야욕만 키워주고 말았다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2005년 수퍼노트 의혹도 비슷하다. 당시 미국은 북한이 수퍼노트(위조지폐)를 제작하고 있다고 대대적으로 공세를 폈다. 고농축우라늄 정보의 불확실성을 경험한 우리 정부는 일단 증거부터 공유하자고 요구했지만 이때도 증거는 없었다. 미국은 유일한 근거로 ‘북한이 스위스제 특수잉크를 수입했다’는 사실을 들었을 뿐 수퍼노트 제작 의혹을 사실로 뒷받침하지는 못했다.

이에 대해 전직 고위급 관료 역시 “이번에는 북한을 직접 겨냥하는 게 아니고 대북제재의 키를 쥐고 있는 중국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며 “북한과 달리 중국의 몇몇 전직 관료들은 진본과 다를 바 없는 수퍼노트를 제작할 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미국이 이를 무기로 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 시사주간 뉴스위크 8일자도 부시행정부 때 위조지폐문제를 조사했던 외교관의 말을 인용, “수퍼노트는 중국의 전직 군 인사들에 의해 중국에서 제작됐다”고 보도했다.

한·미·일이 강력한 대북제재 방침이 중국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되는 가운데 한·미 양국의 ‘수퍼노트’ 공조가 이번에는 상황을 뒤바꿀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09-06-10 오후 12:04:20 내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