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외국 동전, 안 바꿔주나 못 바꿔주나?
36 3880 2013-05-08
은행들, '외국 동전은 환전 불가' 안내만 제대로 해줘도...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미국 케네디 대통령은 각료들과 피 말리는 회의를 거듭했습니다. 당시 쿠바를 지지하던 소련 때문에 미국이 심하게 압박을 받고 있을 때 한 참모가 케네디 대통령에게 말했습니다. “아주 난처한 상황에 처하셨습니다, 각하.” 그러자 케네디 대통령은 “당신도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지 않습니까.”라고 되물었답니다. 비밀 녹음됐던 이 대화는 ‘케네디 테이프’라는 이름으로 나중에 일반에 공개됐습니다.

국내 은행에서 외국 동전을 환전해주지 않는 문제(이하 ‘환전 거부 문제’)는 단지 남의 일이 아닙니다. 나와 관련된 문제이고 우리가 금융 당국에 대책을 요구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이 기사의 출발은 바로 여기서 시작됐습니다. 은행들이 외국 동전을 거부해온 것은 사실 하루 이틀 일이 아닙니다. 인터넷으로 검색만 조금 해봐도 10년, 20년 훨씬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사이 은행 시스템은 첨단을 달리며 진화를 거듭해왔는데 이상하게 외국 동전에 대한 환전 시스템은 제 자리 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은행들은 ‘바꿔줄수록 손해’라는 입장만 되풀이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익 창출이 목표인 기업이, 앉아서 손실을 볼 수는 없다!’는 원론에는 공감합니다. 대국민 서비스 기관도 아닌데 말이죠. 반면, ‘외국 지폐로 환전해줄 땐 수수료를 꼬박꼬박 떼면서 그 지폐를 쪼개 나온 동전은 왜 우리 돈으로 다시 안 바꿔주느냐’는 사람들의 반론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전국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은행들은 우리 돈을 외국 돈으로 환전할 때마다 평균 1.75%의 수수료를 가져갑니다. 10만 원을 환전하면 1,700원의 이익을 보는 셈이지요. 작년 해외에 다녀온 사람들이 1,300만 명을 넘었으니 은행들이 환전 수수료도 낸 영업 이익은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수수료 주고 바꾼 돈을 외국에서 미처 다 사용하지 못하고, 남은 동전 몇 개 들고 왔더니 일반 시중 은행에서는 우리 돈으로 환전을 안 해줍니다. 인천공항 내 환전 전문 은행 몇 군데와 외환은행 정도가 환율의 50% 값으로만 바꿔주는 게 현실입니다. 그나마 50%를 쳐주는 것도 달러나 유로, 엔화에 그치고 있지요. 외국 동전이 서랍 속으로 들어가 쓸모없는 쇳덩어리가 되는 이유입니다. 민주통합당 김영주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통계로 만든 보도 자료를 보면 2006년도 기준으로 그 ‘쇳덩이들’이 2천억 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여기서 잠깐 은행들이 왜 환율의 50% 값으로만 환전해주는지 알아볼까요? 역시 은행연합회 관계자의 말을 빌리겠습니다. 100원어치 외국 동전을 받고 100원을 내줬다고 가정할 때 그 외국 동전을 보관(보관료)했다가 해당 국가로 수출(운송료+보험료 등)할 때까지 70원이 든다고 합니다. 그래서 50원만 내줘야 손해를 20원까지 줄일 수 있다는 것이죠. ‘바꿔줄수록 손해’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은행들은 환전 거부를 할 수밖에 없다며 하소연합니다. 그렇다면 대책은 없는 걸까요? 은행 잘못이네, 외국 동전을 들고 온 사람 잘못이네 소모적인 공방은 접고 말이죠. 이미 잠자고 있는 상당량의 외국 동전을 깨울 방법이 없다면 더는 잠을 자지 않게 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이건 은행들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해외로 나가기 전 환전할 때 각 은행 창구에서 ‘외국 동전은 이러이러한 사정 때문에 우리 돈으로 다시 환전이 안 되니 입국 전 해당 국가에서 지폐로 바꾸시거나 물건 구입 시 최대한 남은 동전을 쓰시라’는 안내만 철저히 한다면 말이죠. 외국 동전은 국내에서 환전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분이 의외로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때 보이스피싱으로 수많은 피해자들이 넋 놓고 예금을 빼앗길 때 은행들이 대책 마련에 미온적이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더 빨리 대책을 내놨더라면 피해를 조금이라도 더 줄였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다행히 은행연합회에서 은행들을 상대로 적극적인 홍보에 나선다고 하니 기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SBS 원문 기사전송 2013-05-08 0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