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세월 앞에 여왕의 모습도 바뀐다.
4250 2004-10-16
화폐의 도안으로 사용되는 소재는 인물초상, 동·식물, 건축물 등 매우 다양하지만 각국 화폐의 주된 도안소재로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것은 역시 인물초상이다. 그렇다면 현재 지구상에서 유통되고 있는 수천종의 화폐에 가장 많이 등장한 인물은 누구일까? 바로 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이다. 화폐를 사용하고 있는 세계 200여 국가중 영국 여왕을 자국 화폐의 도안소재로 사용하고 있는 나라는 캐나다, 호주 등 20여국에 달한다. 이렇게 많은 국가의 화폐에 영국 여왕이 등장하는 이유는 영국이 영연방(英聯邦)의 맹주로서 한때 세계를 지배했으며 아직까지도 영연방 국가의 수는 50개가 넘기 때문이다. 영연방 국가중 20여개에 이르는 국가가 아직도 영국 여왕을 자국(自國)의 국가원수로 규정하고 있다고 하니 여왕의 상징성이 어느정도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처음 화폐에 등장한 것은 1953년 왕위를 승계 받으면서부터이다. 당시 나이가 27세에 불과했기 때문에 처음 화폐에 등장한 여왕의 모습은 실물만큼이나 젊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흐르는 세월 앞에 여왕도 어쩔수 없이 젊음을 잃어 가면서 일부에서는 화폐에 묘사된 여왕이 실제나이와 모습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끊임없이 제기하기도 했다. 여왕의 화폐초상은 지금까지 은행권과 주화에 각각 4차례씩 모습이 바뀌었다. 10년마다 한번꼴로 바뀐 셈이다

현재 유통되고 있는 화폐에 담겨진 여왕의 모습은 1990년에 바뀐 것으로 비교적 가장 최근의 모습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78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건강하고 왕성한 대외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조만간 화폐속의 여왕 모습이 또 한번 바뀔런지 모른다. 그러나 영국정부도 고민이 많다. 화폐속의 여왕 모습을 실제에 가깝게 담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젊고 권위있는 모습을 그대로 유지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있어 사이에서 접점을 찾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여하튼 지금의 화폐인물은 실제 여왕모습과 많이 다른데다 그간 실제 모습에 가깝게 바꾸어온 관행을 감안할 때 앞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과연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지 매우 궁금하다.

지구상에 화폐가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이와같이 생존해 있는 인물이 하나같이 동일디자인(반측면상)으로 그것도 연령별로 반세기가 넘게 화폐에 등장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 될 것 같다. 여왕이 사망할 경우 아들 Charles 왕자가 왕위 승계와 함께 화폐도안인물로 등장하겠지만 현재 그의 나이 50이 넘었으니 화폐도안에서의 여왕의 장수기록을 깨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편 최근 영연방 국가의 하나인 호주에서는 새 지폐에 영국 여왕 얼굴을 빼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 나라 사정도 있겠지만 영국왕실의 권위가 예전만 못한 탓이 아닌가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