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원 지폐 거북선
74 5660 2009-05-11
1971년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회장은 영국 바클레이즈 은행 관계자들 앞에서 호주머니 속 500원 지폐를 꺼내놓았다. 공장도 없는 상태에서 현대 조선소를 설립하기 위해 차관을 빌리러 간 자리였다.

“이걸 보시오. 이것이 우리 거북선이오. 당신네 영국의 조선(造船) 역사는 1800년대부터 시작했다고 알고 있는데, 우리는 벌써 1500년대에 이런 철갑선을 만들어 일본을 혼낸 민족이오. 우리가 당신네보다 300년이나 조선 역사가 앞서 있었소. 다만 그 후 쇄국 정책으로 산업화가 늦어져 국민의 능력과 아이디어가 녹슬었을 뿐 우리 잠재력은 고스란히 그대로 있소.”

당당하게 보여준 돈에는 바다 위에 떠 있는 거북선이 그려져 있었다. 임기응변의 결과로 차관을 얻은 그는 무사히 조선소를 세워 ‘거북선 마케팅’의 성공을 이끌었다. 지폐 한 장에 그려져 있던 거북선 모습이 현재 세계 제일의 조선 강국 한국을 만드는 시발점이 됐다.

우리 화폐에 거북선이 도안으로 사용된 것은 1953년 제2차 화폐개혁 당시 발행된 ‘환’ 표시 지폐(1000환, 100환, 10환)부터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거북선은 우리 돈 13종(지폐 7종, 주화 6종)에 도안으로 사용돼 단일 소재로는 ‘최다 출연 모델’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열세 번이나 화폐 도안으로 사용되다 보니 새 도안이 나오면 논란이 일기도 했다. 특히 73년 발행된 500원권 지폐에 이순신 장군과 함께 등장한 거북선은 이전 것과 다르다며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당시 문공부에서 각계 전문가의 의견을 모으고 ‘충무공 전서’ 등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제작한 현충사 거북선 모형을 모델로 한 것이어서 이전 것보다 정확했지만 단지 낯설다는 이유로 비난받은 것이다. 이전 거북선이 민화를 기본으로 한 것으로 역사적 고증 부분이 미흡했던 점을 보완하고자 특별히 디자인에 신경 쓴 것이 오히려 매를 맞았다.

거북선의 실체에 대한 논쟁은 현재 진행중이라고 한다. 새로운 자료가 발굴돼 또다른 거북선의 모습을 화폐 속에서 만나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중앙일보 원문 기사전송 2009-05-11 02:57 최종수정 2009-05-11 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