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탕금 3만원으로 은행 창립한 고종
68 3688 2009-04-07
민족자본에 기초한 한국 최초의 은행은 1899년 창립한 대한천일은행에서 그 역사가 출발한다.

우리은행 은행사박물관이 소장 중인 대한천일은행의 창립 청원서 문건을 보면 은행이 필요한 까닭을 "화폐융통(貨幣融通)은 상무흥왕(商務興旺)의 본(本)"이라고 적었다. 화폐 경제가 곧 상업 발달의 근본이라는 뜻인데, 당시만 해도 조선은 화폐 경제 사회가 아니었음을 엿볼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은행은 출범했다. 초대 주주는 18명.

창립자 겸 창립 최대 주주는 다름 아닌 고종황제였다. 그는 은행 설립을 위해 내탕금 3만원을 쾌척했다. 그 외에도 관료, 민족상인 등이 주주로 참여했다.

정관 제10조를 보면 "한인(韓人) 외에는 깃권의 매매양도를 불허함"이라고 규정했다.

조선시대 고문서에 흔히 보이는 '깃권'이란 말로 주식을 표기한 대목이 흥미롭거니와, 아울러 이를 통해 이 은행이 철저히 '민족자본'을 지향했음을 엿볼 수 있다.

우리은행(은행장 이종휘)이 창립 11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을 마련해 13일 서울 중구 회현동 은행 본점의 은행사박물관에서 개막한다.

'우리나라 최고(最古) 민족은행'을 슬로건으로 내건 이번 특별전에는 대한천일은행 설립 청원서와 그 최초 정관, 그 창립주이자 최대 주주인 고종황제의 어새(御璽)와 어보(御寶), 영친왕이 주주명부에 등재된 이 은행 좌목, 대한제국 황실에서 사용하던 식기류 등이 자리를 함께한다.

한국의 은행사에서 영친왕(1897-1970)이 등장하는 까닭은 그가 바로 1902년 이후 1906년까지 대한천일은행 2대 총재를 역임했기 때문이다. 총재 취임 당시 6살에 지나지 않았고 퇴임 때도 9살에 불과한 그가 실제 총재 역할을 하지 않았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대여한 고종황제 국새류로는 '칙령지보'(勅令之寶)와 '대군주폐하황제'(大君主陛下皇帝) 2점이 출품된다.

이 중 칙령지보는 대한제국이 황제 자주국을 표방하면서 종래 조선왕조에서 사용하던 거북을 대신한 용 손잡이 국새로 주로 칙령을 반포할 때 사용했다. '대군주폐하황제' 도장은 백옥으로 제작했으며 실무가 아닌 의례용이었다.

이번 특별전은 6월5일까지 계속된다.

연합뉴스 기사전송 2009-04-07 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