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I 국장인데… 먹지 다발 블랙머니로 속여 십수억 사기
45 5985 2008-10-27
유엔 산하 모 재단의 총재를 사칭하면서 '블랙머니' 즉 해외의 비자금을 먹지형태로 만들어 국내로 들여온 뒤 합법화 하는데 필요한 기계와 약품 등을 구입한다고 속여 십수억 원을 가로챈 전문사기단이 경찰에 붙잡혔다.

블랙머니란 공적인 통로를 통하지 않고 음성적으로 유통되는 지하자금을 뜻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유엔 산하 재단의 총재, FBI 국장 등 특수한 신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계 각국의 지하자금 즉 블랙머니를 관리, 처분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면서 "지하자금을 국내로 들여올 때 세관을 통과하기 위해 까맣게 염색해 먹지 형태로 만들었는데 이를 기계로 세탁하면 정상적인 화폐가 된다"고 속였다.



지난 5월 서울 삼성동 주변 커피숍에서 법무사 박모(44) 씨는 지인을 통해 유명인사를 소개받게 된다. 기품이 느껴지는 이 신사는 자신을 유엔 산하 모 재단의 총재라고 소개한다. 워낙 말 솜씨가 좋은데다 주변 사람들도 "총재님, 총재님"하며 떠받드는 모습을 보고 박 씨는 자연스럽게 그 신분을 믿게 되었다.

이들 '가짜총재' 일당은 평소 채권과 달러 등을 보여주고, 자신들이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은닉해 놓은 빌딩을 압수 관리하고 있다고 속이면서 재력가임을 과시했다.

자주 접촉을 해오던 어느날 가짜총재는 엄청난 제안을 하는데 바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블랙머니를 일반 화폐로 전환하려 한다는 것이다.

가짜총재는 "블랙머니를 일반 화폐로 바꾸는 과정에 기계와 특수약품이 드는데 여기 투자하면 10배로 돌려주겠다"고 박 씨를 설득한다. 자신이 세계 각국의 비자금을 관리해 오고 있는데 세관을 통과하기 위해 화폐를 까맣게 특수염색했다는 것이다. 이 염색한 돈을 세탁만 하면 달러를 비롯해 유로, 엔화 등 일반 돈으로 바뀐다는 것이 이씨의 설명이었다.

이들은 필리핀 등에서 들여온 위조달러 뭉치를 보여주면서 "이것이 블랙머니를 바꾼 돈"이라며 기계만 들여오면 자신들이 엄청난 돈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박 씨를 현혹시킨다.

또 지폐크기만큼 잘라놓은 먹지를 블랙머니라고 하면서 이를 일반 화폐로 바꾸는 과정까지 사진으로 보여준다.

먹지가 달러가 될 것이라고 믿은 박 씨는 기계값 등 2억 원을 투자했지만 이후 총재 일당 등은 연락이 두절됐다.

이 같은 수법으로 사기를 당한 사람만 10여 명. 경찰조사결과 이들은 유엔산하재단 총재나 FBI, CIA 등 미국 정보기관의 국장이라고 신분을 가장해 같은 수법으로 10억여 원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아직도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피해자들도 있다고 밝혔다. 그 만큼 범행이 치밀했던 셈.

서울 방배경찰서는 국정원으로부터 첩보를 받고 수사에 착수해 이모(52) 씨 등 사기단 6명을 검거하고, 이 씨 등 2명을 구속했다. 경찰은 인터폴과 연계해 해외 전문 달러 위조단을 추적하는 등 수사를 확대할 예정이다.

2008년 10월 27일(월) 오후 6:18 [노컷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