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디지털 위안화로 달러화 패권에 도전
398 85 2020-06-02
“21세기를 지배할 결정권은 핵무기가 아닌 화폐다. 화폐를 통제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쑹훙빙(宋鴻兵) 중국 글로벌재경연구원장이 그의 저서 <화폐전쟁>에서 주장한 내용이다.

현재 국제사회에서 화폐를 통제하는 국가는 미국이다. 그 이유는 미국의 달러화가 기축통화(key currency)이기 때문이다. 기축통화란 무역과 금융을 비롯한 국가들 간 거래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특정 국가의 통화를 말한다.

미국 달러화 패권에 강력하게 도전해 온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은 그동안 자국 통화인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만들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 왔다. 중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후 달러화 의존도를 줄이며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 편입,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 등 ‘위안화 국제화’에 적극 나서 왔다. ‘위안화 국제화’란 중국의 공식 화폐 위안화가 세계 경제에서 교환의 매개, 가치 저장의 수단, 회계 단위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위안화를 주요한 기축통화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의 이런 의도에 따라 위안화는 국제 결제 시장에서 달러화, 유로화, 엔화, 파운드화에 이어 5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안화의 위상은 달러화에 비하면 아직까지 한참 낮은 수준이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위안화의 국제 결제 비중은 1.65%에 불과하다.

위안화가 달러화(40%)를 뛰어넘으려면 앞으로 갈 길이 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특히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기축통화로서 달러화의 국제적 위상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미국의 무제한 양적완화 조치에 경제대국인 중국은 달러화의 위력을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됐다. 이 때문에 중국은 달러화에 맞서 위안화를 강력한 기축통화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중국, 디지털 화폐 카드 통할까

중국이 달러화 패권에 대응하기 위해 내놓은 카드가 디지털 화폐(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CBDC)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전 세계 중앙은행들 가운데 디지털 화폐 분야에서 가장 앞서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은 각국 중앙은행들 중 처음으로 2014년부터 디지털 화폐 연구를 시작했고, 2017년 5월 디지털 화폐연구소를 세웠다. 중국 정부는 지난 1월부터 CBDC 발행의 법적 기반이 되는 ‘암호법(密碼法)’을 전면적으로 실행하고 있다.

‘암호법’은 블록체인 기술 및 산업의 발전을 규율하는 기본적이고 중요한 법률이다. ‘암호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암호’는 은행계좌나 인터넷 개인계정에 진입하기 위해 입력하는 암호(password)와는 다르다. ‘암호법’상의 암호(encryption)는 정보를 특정한 변환 방법을 이용해 암호화하고, 보안을 인증하는 기술, 제품, 서비스로 일종의 암호화 기술이다.

인민은행은 또 지난 2월까지 84개의 CBDC 관련 특허를 출원했다. 특히 인민은행은 지난 4월부터 선전, 쑤저우, 슝안신구, 청두 등에서 디지털 화폐 전자결제(Digital Currency Electronic Payment, DCEP)를 비공개로 테스트하고 있다. 인민은행은 오는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이전까지 테스트를 완료할 계획이다. 인민은행은 현재 4개 도시의 특정 구(區)를 지정해 주민들에게 ‘디지털 위안화’를 지급하고 이를 해당 지역에서 유통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웨이보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디지털 위안화의 사진이 올라오고 있다. 디지털 위안화는 현재 통용되는 위안화처럼 중국 건국의 아버지인 마오쩌둥 전 국가주석의 얼굴과 발행연도 등이 포함된 일련번호가 들어가 있다.

인민은행은 중국의 4대 국유은행 중 하나인 농업은행에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 적용되는 디지털 위안화의 보안성과 안정성 등을 시험하고 있다. 인민은행은 앞으로 공상·중국·건설은행 등 나머지 국유은행과 차이나모바일 등 3대 통신사 및 세계적 전자상거래업체인 알리바바, 최대 인터넷기업인 텐센트 등을 디지털 위안화 보급의 파트너로 동원할 계획이다. 디지털 위안화의 성공 여부는 얼마나 많이 쓰이고 거래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위안화의 가치는 현재 통용되는 위안화와 똑같다. 디지털 위안화는 민간 발행 디지털 화폐와 달리 인민은행이 가치를 보장하는 법정화폐로서 변동성이 큰 암호화폐와 차별성을 갖는다. 인민은행은 위안화를 은행에 예치한 만큼의 디지털 위안화를 4개 도시 특정 구 주민들의 전자수첩에 넣어 줘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디지털 위안화는 빨리 정착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 정부의 강력한 통제력에 따라 국민들이 앞으로 일상에서 마음 놓고 디지털 위안화를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또 세계 1위 수출 대국인 중국은 교역 등 대외 거래에서도 디지털 위안화로 결제하는 비중을 높일 것이 분명하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는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부터 디지털 위안화를 사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알리페이와 위챗페이 사용이 보편화된 중국은 지금도 사실상 ‘현금 없는 사회’다. 거지가 구걸할 때도 QR코드를 쓰는 모바일 결제를 활용할 정도다. 그런데도 중국 정부가 디지털 위안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무엇보다 국내외 자금 흐름과 자본 유출, 이동 실태 등을 정부와 중앙은행이 한눈에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모바일 결제 빅데이터와 세계 최고의 안면인식 기술을 보유한 중국에서 디지털 위안화까지 통용될 경우 중국 정부는 국민들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중국은 세계 최초의 ‘디지털 사회주의’ 국가가 될 수 있다. 게다가 중국 정부는 위조지폐 제작·유통, 부동산 투기, 돈세탁, 세금 탈루 등 각종 범죄를 척결할 수 있다. 또 화폐 제작과 유통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크게 절감할 수 있다. 더구나 지폐, 동전과 같은 실물화폐를 통해 코로나19 등 전염병 바이러스의 확산도 막을 수 있다.

특히 중국 정부는 디지털 위안화를 통해 미국 주도의 세계 금융망에서 벗어나 금융 주권을 행사하려는 의도도 있다. 미국이 1973년 만든 SWIFT는 그동안 중국의 금융 주권을 제약해 왔다. SWIFT에서 완전 퇴출당하면, 중국 대형 은행이라도 생존할 수 없다. 하지만 디지털 위안화를 사용하는 국가들이 많아지면 이들을 중심으로 SWIFT를 우회하는 새로운 국제 금융망을 구축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에 참여할 국가들을 대상으로 국제송금과 무역결제에서 디지털 위안화를 확산시키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슈쿠와 준이치 일본 데이쿄대 교수는 “디지털 위안화는 대외적으로는 일대일로 참여 국가에서 화웨이의 5세대(5G) 이동통신 기술을 사용해 진행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이럴 경우 위안화의 위상은 5G 기술과 맞물려 올라가지만 달러화의 위상은 추락할 수밖에 없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 정부는 디지털 위안화를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기해 공식화하고 일대일로 참여 국가들을 중심으로 유통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라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의 최종 목표는 달러화를 제치고 위안화를 가장 중요한 기축통화로 만드는 것이다.

◆세계 각국 디지털 화폐 연구 경쟁

주요 국가들의 중앙은행도 CBDC 연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지난 1월 유럽중앙은행(ECB)을 비롯해 영국, 일본, 캐나다, 스웨덴, 스위스 등 6개 중앙은행들과 함께 CBDC 연구 그룹을 조직해 공동 연구를 시작했다. 스웨덴의 경우 지난 2월부터 ‘e-크로나’를 도입했다. 지난 2개월간 시범 운용한 결과가 기대보다 훨씬 좋아 전국으로 확대할 방침을 확정했다. 캐나다와 싱가포르 등도 CBDC 시범사업을 벌이고 있다.

프랑스도 중국보다 먼저 CBDC를 발행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프랑수와 빌루아 드 갈로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는 “우리는 세계 최초로 CBDC를 발행함으로써 CBDC를 보유하는 이점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일본 집권 여당인 자민당도 디지털 엔화를 발행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정부와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에 촉구했다. 각국의 발걸음이 빨라진 것은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 발행 가능성과 코로나19 사태 때문이다. 특히 프랑스와 일본은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를 앞세워 유로화와 엔화의 위상을 추월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글로벌 정보기술(IT)업체인 미국의 페이스북이 자체 암호화폐인 리브라(Libra) 발행을 추진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리브라를 발행하기 위해 스위스 제네바에 민간 기업들이 독립 회원으로 참여한 비영리단체 리브라협회를 설립했다. 리브라협회는 최근 미국 재무부 차관 출신의 결제 규제 전문가 스튜어트 레비 HSBC 최고법률책임자(CLO)를 신임 최고경영자(CEO)로 선임했다.

레비 CEO는 “CBDC 통용을 위해 표준을 설정하고, 규칙을 정하고, 사람들이 준수하고 따를 수 있는 일정 수준의 행동 지침이 마련돼야 한다”면서 “리브라 플랫폼을 기존 지급결제 시스템보다 더 안전하고 더 간편하고 더 저렴하게 만들 것이다”라고 밝혔다. 레비 CEO는 “개인과 기업이 돈을 보다 쉽게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하고, 금융 시스템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10억 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 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CBDC에 신중한 입장을 보였던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연준)도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갔다. 레이얼 브레이너드 연준 이사는 “달러화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우리가 CBDC의 정책 개발과 연구에서 앞서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브레이너드 이사는 연준이 ▲CBDC 발행과 비용 및 운용상 취약성 ▲CBDC 발행 및 감독 주체 ▲금융 안정성 문제 등을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브레이너드 이사의 이런 발언은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를 통해 달러화의 패권에 도전하려는 의도를 의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경제 전문 방송 CNBC는 “디지털 위안화는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에 따른 무역이나 인프라 거래들에 활용될 수 있다”면서 “이를 통해 위안화가 국제화되면 달러 패권이 도전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중국 디지털 위안화가 미국 달러화의 위상을 위협할 경우 미·중 간 디지털 화폐 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페이스북이 리브라 발행을 적극 추진하는 점도 연준이 입장을 바꾼 요인으로 꼽힌다. IT기업이 민간 차원의 암호화폐를 발행할 경우 국제결제 시스템이 크게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를 실제로 통용시킬 경우 반미 국가들을 중심으로 탈(脫)달러화 움직임이 빨라질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미국도 디지털 달러화를 발행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입장에서 절대로 달러화 패권을 중국 위안화에 넘겨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앞으로 현재 통용되는 달러화와 디지털 위안화, 앞으로 도입될 디지털 달러화와 디지털 위안화 간 통화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 아무튼 디지털 화폐가 미·중 패권전쟁의 또 다른 전장(戰場)이 될 것이 분명하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1호(2020년 06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