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칼럼] 와타나베 부인을 경계하라
241 5789 2011-04-04
한국에 '복부인'이 있다면 일본에는 '와타나베 부인'이 있다. 복부인은 앞으로 부동산 가격이 오를 것을 예상하고 차익거래에 투자한다. 와타나베 부인은 좀 더 세련되게 글로벌 통화의 차익거래에 투자한다. 그들은 낮은 금리의 엔화 자금을 빌려 고금리의 해외자산에 투자해서 고수익을 누린다. 와타나베 부인이라면 해외에 소액투자하는 일본의 중·상층 주부를 칭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들이 대규모 엔 캐리 트레이드(Yen carry trade) 자금을 움직이며 엔화가치를 폭등시키는 외국환 투기세력을 이끌고 있다. 지난 2007년 한 해 동안 이들이 팔고 산 외환규모는 200조엔에 달했다. 이는 도쿄 외환시장 거래량의 약 30%를 차지했다. 그만큼 국제금융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다. 1970~1980년대에 유로달러시장(Eurodollar market)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유로달러(Eurodollar)가 국제금융시장을 좌지우지했던 것에 비교할 수 있다. 그 후 금융자유화ㆍ자본자유화로 유로달러 시장이 쇠퇴하면서 그 대신 등장한 것이 와타나베 부인인 셈이다.

최근 엔화가 초강세를 보였던 원인 중의 하나도 와타나베 부인이 움직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일본 대지진과 원전사고 그리고 리비아 사태가 한꺼번에 터지면서 무려 3조달러에 달하는 일본의 해외투자 자금이 회수될 것이란 우려가 컸다. 외환시장에서 엔화 가치는 2차대전 후 최고 수준으로 폭등했다. 불확실성이 높아지자 위험자산 비중을 줄이기 위해 해외투자를 거둬들이는 것이다.

엔화 강세를 예상한 투기자금까지 몰리면서 엔화 강세를 더욱 부채질했다. 이런 비상 상황에서 일본은행은 일주일 동안 24조엔(약 3000억달러)을 쏟아 붓고 서방선진7개국(G7)도 엔화 강세를 잡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서 엔화 강세 움직임은 일단 멈췄다. 1995년 1월에 발생한 고베 지진 때에도 엔화가치가 지금과 같은 이유로 폭등하자 G7은 그해 4월 역(逆)플라자 합의로 엔고 저지를 위한 국제 공조를 실시했다.

엔화가치의 급격한 변동성은 일본 경제를 불안에 빠뜨리는 것은 물론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특히 와타나베 부인이 거둬들이는 해외 투자자금은 선진국보다는 주로 신흥국에 집중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에 일본의 해외 채권투자는 전세계적으로 평균 17.6% 감소했다. 그러나 아시아에서는 31.7%나 줄었고 동유럽에서는 21.1% 감소했다. 당시에 우리나라가 심각한 외화유동성 경색으로 위기를 맞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일본 투자자들은 호주에 600억달러, 브라질에 340억달러의 금융자산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의 갑작스런 자금인출은 호주ㆍ브라질 등 신흥국들에게 재앙을 가져다 줄 우려가 크다.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의 급격한 회귀는 일본 경제에는 엔화가치 상승으로 수출 부진, 경기침체 등 어려움을 주며 신흥국들에는 급격한 자본 유출, 환율급등으로 외환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에 와타나베 부인의 해외투자는 신흥국들의 유동성을 확대해서 경기를 과열시키고 부동산ㆍ증권 등 자산가치가 폭등한다.

따라서 금융위기 이후 자본규제의 필요성에 대해 국제적 공감대가 어느 정도 이뤄졌다.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주요국과 국제통화기금(IMF)등이 은행세나 금융거래세, 파생상품 거래규제 등과 같은 금융규제 논의를 상당 부분 진전시키고 있다. 금융 시스템의 위험을 줄이는 방안으로 외환거래에 세금을 부과해 투기를 억제하려는 소위 '토빈세(Tobin's tax)' 도입도 다시 논의되고 있다. 토빈세 등은 투기적 자금거래를 억제해서 은행의 건전성을 유지하고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려는 것이다.

특히 투기적인 외환거래를 규제하고 외환거래의 수레바퀴가 너무 미끄럽지 않도록 외환시장에 약간의 모래(세금)를 뿌리자는 것이 제임스 토빈 교수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정부규제는 기본적으로 와타나베 부인의 시장참여와 자율은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시장실패를 보완하기 위해 실시돼야 한다.

서울경제 원문 기사전송 2011-04-03 1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