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조지폐의 제왕, 히틀러
16 4459 2004-11-18
나치스에 의해 10만 명 이상의 포로들이 살해당한 작센하우스 집단 수용소의 18, 19구역은 위조지폐 제조에 이용되었다. 화가와 활판인쇄 기사 및 은행직원등 여러 나라의 포로들이 여기서 나치스를 위해 영국의 파운드화와 미국의 달러화를 만들어 냈다.
보통 사람들이 잘 알아볼 수 없는 비밀 숫자까지도 신중히 고려해야 했다. 위조화폐는 아주 미세한 부분조차 진짜와 같아야 한다. 집단 수용소의 포로이자 당시 위조 사령부의 요원이었던 저술가 페터 에델은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확신 했다.
그들은 '런던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은 지폐를 바늘로 찔러봄으로써 파운드화를 확인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그래서 파운드화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가면 종종 수십 군데씩 바늘 자국이 난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여러자리에 바늘 자국이 나고 재 묻은 손으로 만져 구겨지고 허름해진 지폐는 진짜처럼 그럴 듯 했다.

포로 스칼라의 비밀문서에 따르면 히틀러의 위조지폐국은 영국 통화로 5파운드짜리 314만 5,867장, 10파운드짜리 234만 8,981장, 20파운드짜리 133만 7,355장, 50파운드짜리 128만 2,902장을 인쇄했다.
그러나 달러 생산은 생각만큼 빨리 진행되지 못했다.
1945년 1월 달러를 만들고자 했던 200번째 시도가 실패했다. 히틀러는 "4주 안에 위조화폐가 완성되지 않으면 모든 포로들을 교수형에 처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들은 255번째 시도에서 드디어 성공했다. 그러나 위조 달러가 미처 생산되기 전에 소련의 대포 소리가 종전을 알렸다.

품질과 완성도에 따라 화폐는 네 종류로 분류되었다. 잘못 인쇄된 지폐들은 비행기로 전방에 뿌려졌다. 좀 나은 위조화폐는 상인, 외교관, 관리, 대리인 등을 통해 유통되었다. 보안 임무에 종사하는 탐정이나 첩자들에게도 임무를 수행한 대가로 이 위조화폐가 지불되었다.

보안 요원들은 가치 있는 귀금속이나 금 장식 또는 국제 교역에 사용되는 외국환을 합법적으로 아니면 암시장을 통해 사들일 때도 위조 파운드화를 사용했다.
안도라, 벨기에, 덴마크, 프랑스, 그리스, 아일랜드, 이탈리아, 유고슬라비아, 리히텐슈타인, 스위스, 슬로바키아, 스페인, 터키, 헝가리 그리고 다른 대륙의 곳곳에서 위조화폐가 등장했다.
이는 인플레이션과 혼란을 야기 했다.

1943년 말에는 대영제국도 위조화폐의 물결로 시끄러웠다. 전쟁이 끝날 무렵 위조화폐는 전체 화폐의 약 50퍼센트에 달했다. 따라서 '영국은행'은 모든 지폐를 회수하였고 10파운드 지폐를 없앴으며 나중에는 5파운드 지폐도 무효라고 선언했다.

『돈과 인간의 역사』/클라우스 뮐러 <펴낸곳: 이마고>에 수록된 내용 입니다.